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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콘텐츠] 드라마 쪼개기, 콘텐츠 전쟁 시대의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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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쪼개기, 콘텐츠 전쟁 시대의 생존 전략

김선영(TV평론가)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는 드라마 역사를 뒤바꾼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웹드라마 사상 최초로 에미상 9개 부문 지명, 골든 글로브 4개 부문 지명 등의 업적을 이뤄냈고,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동영상 온라인 서비스 업체였던 넷플릭스를 글로벌 콘텐츠 공룡으로 부상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공개할 때 전체 에피소드를 동시 공개하는 파격적인 편성을 선보였다. 기존에 없던 편성 방식은 업계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곧 시청자들 사이에서 ‘빈지 워치(콘텐츠 몰아보기)’ 열풍을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둔다. 인기 드라마 작가 패멀라 더글러스(Pamela Douglas)는 저서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Writing The TV Drama Series)’에서 “이 새로운 편성 방식은 제작 일정은 물론이고 창작자와 시청자의 관계에도 대변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시청자가 다음 주에도 돌아오도록 유도하기 위한 극본 대신,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해 더 탄탄한 서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의 강점이었던 이 특유의 편성 방식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전체 회차를 분리해 공개하는 ‘파트제’ 방식을 도입하면서, ‘빈지 워치’에 익숙해진 구독자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드라마 쪼개기’ 논란이다. 폭발적인 화제를 낳은 ‘더 글로리’가 논란을 부채질했다. ‘더 글로리’는 흥행 작가 김은숙의 첫 복수극, 톱 배우 송혜교의 연기 변신 등 여러 이유로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공개 당일, 전체 16부의 절반인 8회만 오픈해 비판에 휩싸였다.

‘더 글로리’가 부채질한 ‘드라마 쪼개기’ 논란의 핵심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서사 전략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체 공개 방식이 더 밀도 높고 완결성 있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것과 달리, 파트제는 구독자를 묶어 두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이기에 오히려 서사의 연속성을 방해한다. 가령 ‘더 글로리’는 복수극 장르의 특성상 피해자의 시련이 먼저 그려진 뒤 본격적인 가해자와의 대결은 후반부에 이뤄진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이 전부였던 파트1은 시청자가 되돌려받아야 할 카타르시스 대신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이 같은 역효과는 다른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디즈니+의 ‘카지노’와 티빙의 ‘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디즈니+가 선보인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카지노’는 상승세를 이어가야 할 시점에서, 기대에 비해 관심이 저조했던 ‘아일랜드’는 반전을 노려야 할 시점에서, 파트1을 마쳐 이야기의 흐름을 끊었다. 두 작품 모두 막대한 제작비, 톱 제작진, 화려한 캐스팅 등을 내세운 대작으로, 파트제가 구독자를 묶어 두기 위한 영업 전략에 불과함을 증명하고 있다.

역효과에도 불구하고, 파트제는 앞으로도 OTT의 주요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점점 치열해지는 플랫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세밀한 전략이다. 전체 공개 편성이 유행시킨 ‘빈지 워치’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다. 초반 회차만 보고 이탈한 구독자의 부정적 감상이 여론을 선점하면서 전체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작품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짧은 콘텐츠 유행 주기가 더 단축되고 있다.

파트제는 이러한 추세를 늦추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시청층의 다른 한편에는 취향에 걸맞은 콘텐츠를 깊숙하게 파고드는 시청층도 존재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올해의 키워드로 지목한 ‘디깅 모멘텀’이 그러한 소비층을 겨냥한 단어다. 파트제는 이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에 초점을 맞춘 세밀한 서사 전략이 뒷받침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시청자가 해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편의 완성도를 높이고, 파트1 종료 시점의 터닝 포인트도 미리 설계해야 한다. 결국 시대가 바뀌었을 뿐 가장 중요한 무기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진리를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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