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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정원 세계에 알리는 황지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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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원 세계에 알리는 황지해 작가



1.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꽃 심고, 나무 심는 사람이에요. 정원을 좀 더 나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자연이 하는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2. 2023년 5월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금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첼시 플라워 쇼는 2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강력한 소프트 파워이자 문화적 리더십을 상징하는 국가 행사입니다. 왕실의 공식 일정 중 하나죠.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산야가 가지고 있는 힘과 저력, 잠재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제게 익숙한 환경과 재료를 잘 전달한 운 좋은 전달자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큰 의미는 찰스 국왕의 왕실 개인 별장인 샌드링엄 캐슬에 이번에 전시됐던 ‘백만 년 전에 날아온 편지’ 출품작 가운데 약초건조장(드라이타워)이 이설된 것인데요. 올해 3월 왕을 찾는 방문객들이 감상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3. ‘백만 년 전에 날아온 편지’는 어떤 작품인가요?

병원과 약국이 있기 전 우리의 생명과 건강, 삶의 질을 담당했던 것은 산이었어요. 산이 곧 병원이었고 약국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했어요. 우리는 산과 들에서 나는 약초를 통해 병을 치료하고 자연에 의지해 생존해 왔어요. 약초의 생장 환경을 통해 식물의 생육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본래 있던 것을 되돌려줌으로써 원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식물의 관성을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결국 원시성의 회복이자 인간과 자연의 공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4. 한국인 최초로 첼시 플라워 쇼에서 2011년 '해우소', 2012년 '침묵의 시간: 비무장지대 금지된 정원'으로 연이어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세 번째 쾌거입니다. 정원 문화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영국에서 받은 상이라 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 런던에서 첫 전시 준비를 위해 조감도를 출력하려고 인쇄소에 간 적이 있어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한국이라고 했더니 “너희 나라 아직 전쟁 중이지?”라고 묻는 거예요. 너무 분명한 어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정원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어요. 세 번의 전시를 통해 이제 영국에서 한국정원에 대해 조금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돼 기뻐요. 세계 정원사에 우리의 정신적인 힘과 고유한 철학이 정원을 통해 견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5. 한국정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국은 국토 면적의 70%가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겸손한 삶의 태도와 사계절이 또렷한 한국만의 독특한 기후 환경이 만든 자연생태계의 원시적 관성이 한국정원의 특징입니다.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은 무심함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이 산천초목으로 이뤄진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관조적 아름다움이란 말이 어울려요. 의도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존중이 있어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을 신으로 생각하는 두려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어 자연 순응에 대한 가치관이 모든 것을 유연하게 해요. 이번 전시 때 한국정원에 대한 평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표현이 ‘한국정원은 흐르고 있어요.’, ‘한국정원은 움직여요.’, ‘한국정원은 볼 때마다 달라 보여요.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라는 글이었어요. 아마도 이러한 평가가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6. 작품의 아이디어 및 모티브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생각은 유연하고 싶어요. 좀 더 유연하고 탄력적이고 괜찮은 생각을 하고 싶죠. 좀 더 괜찮은 나를 발견해 나가는 것이 시작이에요. 예민한 성격이다 보니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이 추진력 있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요. 공허와 허무가 드로잉이 되기도 하고, 평범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제 삶의 일상과 행복,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 성장 배경, 기억, 아픔, 상처 등 모든 것이 재료죠. 작업을 하면서 오히려 그다음 아이디어가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아요.

또 어릴 적 정서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때 모든 생각뼈가 형성된 듯해요. 가장 큰 감명을 준 첫 작품은 어머니의 텃밭이에요. 빨간 앵두와 당근꽃, 파꽃이 만발하고, 초여름 이른 아침 이슬에 젖은 여린 쑥갓과 상추 잎이 넘실대고 동생의 기침을 멎게 하기 위해 매년 심은 보라색 도라지꽃, 더덕 향기가 있는 어머니의 텃밭이 그 어떤 작품보다 제 인생 최고의 정원이자 명서예요. 엄마가 아이들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 손수 가꾸신 그 텃밭이 저를 지탱하는 힘이었고, 저를 이루는 근간이자, 가장 창의적인 동화책이었고 분명한 자연 도감이었어요.


7. 가든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나 우선시하는 것이 있나요?

건축가가 그러하듯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에 집착해요. 이 땅에 본래 살고 있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그 궁금함이 시작이에요. 정원은 시간 예술이예요. 향후 10년, 20년 후의 표정을 가늠하고 설계하려 노력하지만, 계절과 시간, 생태계의 변화 속에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는 태양과 바람과 새들만이 알 거예요.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켜낸 태양과 바람이 주인공이자 사는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벌과 나비와 작은 새들이 행복한 곳을 상상해 나가요. 가급적 생태 환경이 복원될 수 있는 원시적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요즘은 생태 복원적 개념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어요. 또 미학과 예술을 논하기 전에 기후 환경에 대비해 다음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와 행동을 설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8.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이자 환경미술가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올해 런던디자인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한국 식물의 이야기를 담은 작업을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A)에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7월에는 싱가포르 가든 페스티벌SGF에서 기후 환경에 대비하는 식물을 고민할 예정이고요. 내년에는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첼시 플라워 쇼에서 ‘멸종위기식물이 멸종위기 컬러를 만든다’는 메시지로 협업 전시를 할 예정입니다. 영국 공연예술의 발생지인 로열 오페라하우스 테라스에도 한국정원이 설치될 예정이예요.

국내 전시로는 고양시와 전주시에서 랜드아트 개념의 정원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또 한국 최초의 철학학교인 전남 함평군 기본학교에 한국정원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작업이기도 해요. 세계 정원사에서 우리의 고유성과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의 정신적인 힘, 우리만의 고유한 철학이 견고하게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정원과 철학이 하나의 몸체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원이 태어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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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플라워 쇼 전시 당시 황지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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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플라워 쇼에 전시된 작품 ‘백만 년 전에 날아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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