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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지성이 보는 전환기의 세계

이 글은 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프랑스 고등 사회과학원(EHESS) 자크 르벨(Jacques Revel·60) 총장과 재단 이인호 이사장과의 대담을 다룬 동아일보 2월 20일자 기사내용이다. 이 대담은 아날학파의 제4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인 르벨 총장과 서양사학자인 이 이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현시대의 흐름을 조망해 보기 위해 마련됐다. (편집자 주)

 

"Q: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혹한 피해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2차대전 후에 유럽이 그렇게 빠른 시간내에 지금처럼 회복된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A: 경험의 다양함이 유럽의 재건과 통합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역사를 위해 획일화는 손해라는 인식, 서로의 차이를 수용함으로써 유럽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지요."


현재 세계는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형성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EU의 탄생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실제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나라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르벨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역사적 경험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같은 불행에 대해 모두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는 그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던 것이지요.

유럽 각국 불행한 과거 반성 통해 EU 탄생 가능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역사적 청산이 어느 정도 이뤄진 데 반해,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두고 아직도 논란이 있습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르벨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발전했지만 유럽에서 독일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이미 분단돼 있었고 소련의 압력도 받고 있었지요. 그런 상황에서는 유럽 각국에 둘러싸여 있는 독일이 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폴란드와 독일은 공동의 역사책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시도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르벨 사실 저는 이 공동의 역사책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책은 정기적으로 개정되고 있고, 이는 역사의 정형화 극복이란 점에서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의 역사라기보다 하나의 픽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런 통합 시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바람직한 유럽의 역사는 바로 다양한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프랑스 학생들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생들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르벨 학생들도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과거에 비해 사료 연구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오랜 고전 문화의 전통 속에서 발전해 온 나라인데 최근 고전학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어 걱정입니다. 대신 요즘 학생들은 라틴어보다 다른 외국어를 배워서 현대사를 공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우리가 몸담았던 세대들보다 훨씬 평화적이고, 정치적인 데는 관심이 덜한 듯합니다. 학생들은 부모 세대보다 선입견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지요. 학생들은 정치보다 윤리에, 시민 사회의 발전보다 시민의 권리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세계화의 문제인데 사실상 세계화는 지금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학생들은 세계화에 대해 매력을 느끼면서도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근 10년 동안 논제가 돼 온 세계화는 15∼16세기부터 계속돼 온 것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세계화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프랑스에는 많은 세계적인 학자들이 있는데,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학자는 누구입니까?

르벨 얼마 전에 사망한 피에르 부르디외,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학자를 지식인으로 인정하지요. 독일에서도 위르겐 하버마스를 보면 지식인으로 대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학자는 그냥 학자이지 지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에서는 학자가 영향력 있는 리더로 인정받고 있고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크지요.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혹한 피해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유럽이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지금처럼 회복된 것
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르벨 아마도 다양한 경험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획일화는 손해라는 인식, 서로의 차이를 수용함으로써 유럽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미국과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그런 교훈을 배울 만한 과거의 역사와 경험이 없었습니다.

아프간 민주화엔 폭탄보다 인도적 지원이 도움

작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세계사의 흐름이 큰 전환기를 맞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르벨 9·11 테러 이후 질문 제기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9·11 테러 이후 모든 것이 극히 명확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그래서 테러범들을 공격한다는 미국에 동조했습니다. 이는 미국조차도 실제로 취약하고, 미국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광신주의와 소수의 급진주의자들을 통해 반미 감정이 얼마나 극심한지도 재확인하게 됐습니다. 5개월이 지난 후 이제 그 상황의 명확성은 많이 퇴색됐습니다. 더 이상 미국이라는 하나의 독점적 세력 하에서 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미국을 지원하지 않게 됐고 선악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게 됐습니다. ‘테러’조차도 이제 누가 어떻게 그것을 규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관계는 보다 강력한 연대를 요구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있어왔던 정치적 균형이 더욱더 요구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르벨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탈레반이나 미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탈레반이 축출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전통은 오랜 세월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최근의 상황을 문명의 충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문명이란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란 9·11 테러로 인한 것만이 아니고 오랫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현재 유럽의 당면 과제는 15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돼 온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충돌과 투쟁만 해 온 것이 아니라 타협과 통합도 해 왔습니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 관여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지정학적인 이유가 있지만, 폭탄을 퍼붓는 것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폭탄을 만들 돈으로 식량이나 병원 등을 지원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 만한 정도의 여건입니다.

아날학파와 고등사회과학원(EHESS)

아날학파는 연대기와 영웅 위주의 역사 기술에서 벗어나 전체 사회와 집단에 대한 구조적 통찰을 주장한다. 아날학파는 ‘정치, 개인, 연대’라는 세 가지 우상의 타파를 내걸고 정치 대신 전체 사회, 개인 대신 집단, 연대기적 기술 대신 구조적 설명을 지향하고 있다. 고등사회과학원은 프랑스 역사학의 한 계열인 아날학파의 흐름을 계승해 역사학과 사회과학을 연구 교육하는 프랑스 최고 수준의 대학원 중심 대학이다.

이인호 이사장

1960년 미국 웰즐리대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러시아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와 럿거츠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뒤 귀국해 고려대학교(1972~79), 서울대학교(1979~96)에서 서양사학 담당 교수로 재직했다. 1996년 주 핀란드 대사, 1998년 러시아 대사를 거쳐 2000년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맡아 해외의 한국학 연구 지원 등에 주력하고 있다.

자크 르벨 총장

1968년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역사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파리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1973~77)을 거쳐 1977년부터 파리 고등사회과학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총장을 맡고 있다. 아날학파의 제4세대를 대표하는 그는 아날학파의 기관지인 ‘아날(Annales)’지의 편집인을 지냈다. 현재 유럽지역의 여러 대학교, 연구소, 학회에서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