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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견학, 그리고 한국의 이미지

제1차 한-호 리더스 포럼에서는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이라는 주제하에 양국의 외교정책, 지역안보 및 협력, 그리고 무역 및 경제관계 등의 현안 이슈들에 대해서 열띤 논의를 펼쳤다.

간혹 한국에 대해 무관심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어를 전공하는 우리 학생들이 한국 여행을 꼭 한번 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이 아름답고 인상적인 나라에 대해 좀 더 알고 정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난 2000년, 모스크바 외국어대학교 통역과에 입학한 나는 한국어반에 배치되었다. 어찌 보면 우연한 일이었지만 그 뒤로 한국과의 인연이 12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 일은 운명이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한국국제교류재단 펠로로서 한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만 세 차례였고, 한국이 그리워 그냥 여행을 다녀온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긴 역사와 뛰어난 문화를 가진 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명소들을 둘러보았고, 그만큼 많은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특히 2003년에 아주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던 시절, 비무장지대를 다녀온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였다.
견학을 가던 날, 너무도 유명한 비무장지대는 과연 어떨지, 또 한국 군인들이 유학생인 우리를 어떻게 대할지가 너무 궁금해 마음이 설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군사 지역에 걸맞게 딱딱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군인 역시 남자답고 씩씩해 보이긴 했지만, 조금은 딱딱한 인상이었기에 재미없고 따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런 편견들은 눈 녹듯이 사라졌고 친근감마저 들었다.
우리 일행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버스 여행을 계속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한국 속담이 생각났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한 식당은 매우 맛있는 음식은 물론, 동반해주신 선생님의 농담과는 달리 서비스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마음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간단히 기념 촬영을 한 뒤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건물 앞에 서 있는 병사를 보자 문득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 병사가 쓴 모자가 러시아의 모자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것도 역시 우리를 안내해준 젊은 병사였다. 자꾸 웃음을 터뜨리는 산만한 유학생들의 안내원 역할을 한 그 병사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굉장히 빠르고 딱딱하게 말했다. 다른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듣기 실력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나도 그 병사가 해준 이야기의 20%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 견학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제일 충격적인 인상을 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우리들 중 대부분은 땅굴 체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땅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를 맞이한 것은 거친 돌 벽이었다. 이렇게 딱딱한 땅 속에 굴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이 있었을지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땅굴을 견학하고 돌아가는 길은 너무 힘들었다. 태어난 후 처음으로 해보았던 2002년 10월 설악산 등반 이후 이렇게 힘든 길은 처음이었다. 힘들게 빠져나온 땅굴의 바깥은 상쾌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겨워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젊은 나이에다 한국 역사도 잘 몰랐던 우리가 무엇이 그리도 궁금해 그 속으로 내려갔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토록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것은 지뢰 지대를 둘러싼 풍경이다. 버스 창문 밖으로 지뢰 지대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고양이를 보았다. 그 고양이는 너무나 태연하고 평화롭게 보여서 마치 모든 지뢰의 묻힌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도라전망대에서는 북한에 너무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고, 신비롭기도 했다. 창문 밖으로 한민족을 나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보면서 러시아 사람인 나도 마음이 아팠다. 나의 고향인 구소련이 한반도가 분단되는 데에 한몫을 차지했다는 생각을, 아무리 애써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견학 여행을 다녀온 지 5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난다. 한반도 비극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견학하게 해주신 아주대학교 한국어학당 선생님들, 특히 우리를 지도해주면서 재미있는 농담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준 선생님께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재 나는 한국어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간혹 한국에 대해 무관심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어를 전공하는 우리 학생들이 한국 여행을 꼭 한번 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이 아름답고 인상적인 나라에 대해 좀 더 알고 정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무관심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기는 꺼려지지만 현재 러시아 일반인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한국이 튼튼한 전자제품을 생산한다든가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든가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을 많이 여행했고 평생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나는 이것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큰 이유는 한국을 상징할 만한 이미지가 아직도 국제적이지 않고 막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 하면 스시나 특이한 일본 만화가 떠오르고, 중국 하면 한자, 러시아 하면 크렘린이 떠오르는 것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무엇인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휴대폰이나 자동차만 떠오를 뿐이다.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고작 현대 한국의 잔인하고 삭막한 모습을 드러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정도를 알 뿐이다. 사실, 요즘에 나온 한국 영화들 중에는 감동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 많이 있는데 왜 늘 김기덕 감독의 영화나 <올드보이>, <주유소습격사건> 같은 부정적인 영화만 외국에서 방영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이러한 영화들은 아시아인인 한국인은 무식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인 민족이라는 편견을 부추긴다. 이런 영화들은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될 뿐이다.
하지만 한국은 앞으로 한국 고유문화를 전 세계에서 알리면서 한국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계속 발전해나가리라고 믿는다. 한국어 교사로 일하는 나도 두 나라 간의 교류 및 상호 이해를 증대하는 데에 힘껏 이바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