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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 한국학의 씨앗을 뿌리며

한국 관련 주제의 강연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와 한국 연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진행된 중남미 순회 강연회. 각 강연에서 관객들이 깊은 관심을 보인 질문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싣는다.

한국을 알리는 첫 걸음
멀고도 먼 길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약 33시간 만에 드디어 목적지인 파라과이 아순시온에 도착했다. 남미의 두 나라 파라과이와 페루에서 강연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방문 목적이었다. 10월 13일 오후 7시, 첫 번째 강연 장소인 파라과이 카톨릭대학교 회계•경영•경제 대학 강당에 도착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교육의 역할’에 대해 준비한 P.T. 자료와 함께 내가 먼저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서 단국대 고혜선 교수가 ‘한국어와 한글’ 그리고 ‘한국 문화’에 대해 강연을 이어나갔다. 강연을 마치자 객석에서 여러 질문이 튀어나왔다. 참석자는 교수, 학생 포함해서 약 150여 명. 그중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여러 해를 대사로 근무한 중견 외교관도 있었다. 질문의 주 내용은 한글이 있기 전 한국의 언어생활은 어떠했는지, 단일 민족인 한국 사회와 이민자들의 후손 및 원주민들로 구성된 파라과이 사회의 차이점, 이에 따른 교육관의 상이한 측면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이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 현장
다음 날, 여장을 꾸린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페루로 향했다. 강연 날짜인 10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숙소에서 페루 카톨릭대학교에서 도착한 나는 이 강연회 주관 기관인 동양학연구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문대학에 있는 동양학 연구소에 들어선 순간, 입구 전면에 놓인 서가에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년에 『춘향전』을 스페인어로 번역•출판한 경험이 있는 나는 자연 그 책들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 문학이 세계화되어가는 일면을 보자 번역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연구소장인 레옹(Leon) 교수를 만나 환담한 후 번역한 『춘향전』을 내밀자, 레옹 교수는 연구소에 필요한 귀한 선물을 받는다고 답하면서 깊은 감사를 표했다. 12시 30분, 약 140명의 청중들이 모인 가운데 페루의 첫 번째 강연회가 인문대학 강당에서 시작되었다. 청중들은 먼 나라 한국에서 온 두 명의 학자들이 펼치는 강연을 시종 진지하고 흥미로운 태도로 경청했다. 강의가 끝난 후 질의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사상 체계를 이루고 있는 불교와 유교 외에 기독교의 영향은 어떠했는지, 정부 주도 경제성장의 한계점은 무엇인지, 관료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이 주요 질문 내용이었다.

페루 외교관학교에서의 강연
강연회를 마친 후 한국 문화 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제공된 한국 음식으로 점심을 대신한 우리는 곧바로 다음 강연지인 페루 외교관학교로 향했다. 페루에서의 두 번째 강연은 약 29명 정도의 외교관학교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시작되었다. 제복을 입은 페루 최고의 엘리트 학생들이 내 눈앞에 있었다. 강연을 마치자 젊은 엘리트들답게 질의가 쏟아졌다. 1970년도 해외 과학자 유치사업이 어떠한 실효를 거두었는지, 경제성장 과정에서, 또 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어떠한지, 그리고 경제발전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은 어떠했는지 등의 질문들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 경제발전과 교육의 역할 논의
다음 날인 17일, 이번 순회강연회의 마지막 강연이 페루 최고 국립대학교인 산 마르코스 대학교에서 이뤄졌다. 오후 1시 30분, 강연 장소는 인문대학 강당. 청중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진지하고 뜨거웠다. 마지막 강연이라 힘을 다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강연 후 참석한 한 교수가 교육의 역할을 경제나 산업 활동을 위한 기술 노동력 공급으로 한정한 것은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나는 강연 주제가 ‘한국의 경제발전과 교육의 역할’이기 때문에 교육의 역할을 경제 활동에만 관련지어 설명했다고 답변하면서, 경제와 산업 활동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내는 인문학 역시 경제나 산업 활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중남미는 자원 외교의 중심 지역이다. 또 일찍부터 한국 이민을 받아들여 한국이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오랫동안 스페인 식민지였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이른바 히스패닉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교역 측면에서도 이 지역은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곳이다. 우리의 역할은 이 지역의 한국학의 이식 가능성을 타진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한국학 파종 작업이다. 이 사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1회성 강연보다는 2 주 내지 한 달 과정의 한국학 집중 과정을 개설,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한국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더욱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한국학을 지원, 육성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이번 남미 순회강연회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국제교류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