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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와 한국 현대사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후인 2004년 가을, 나는 서대문 독립공원과 독립문에 가보았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나, 내가 공부하고 있는 신촌 대학가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 광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상쾌한 발걸음으로 인왕산(산 입구에는 담배를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군사시설에 가까이 가지 말고, 무속 행위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표지판이 있다)을 넘어 조그마한 밭과 도로를 지나자 공원에 도착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독립문은 원래 반청 의식의 표현으로 세워졌으며, 지금은 일제강점기의 쓰라린 기억을 기리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가장 큰 시설은 일제 폭정의 상징인 서대문 형무소이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형무소 앞에 세워진 안내문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이 형무소의 역할에 대해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단풍과 상쾌한 날씨 때문에 나는 잠시 형무소 주변을 산책했다.

내 전공 분야는 현대사가 아니다. 하지만 강원대 대학원 시절, 사람들로부터 광복 이후에도 서대문 형무소가 계속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나는 다음 기회에 서대문 형무소를 다시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나는 그 곳을 몇 차례 더 방문했고 흥미롭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공원에 있는 안내문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서대문 형무소를 보존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안내는 필요 없어 보였다. 중앙에 위치한 전시관과 형무소 건물 곳곳에 한국의 독립운동 애국지사들에게 자행된 “야만적인” 고문과 일본 압제자들의 “잔악무도함”, 그리고 이에 무너지기를 거부한 영웅적인 한국 독립 운동가들을 전투적인 어조로 잘 설명해 놓은 안내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무소 건물을 지나자 독립 운동가들이 햇빛은 물론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마저 빼앗긴 채 투옥되었던 작은 감방과 독립 운동가들이 당한 고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전시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여성 수감자들을 고문하기 위한 것도 있었고, 성 고문을 위한 곳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이 직접 고문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특별 체험실도 있었고, 충신 유생에서부터 사회 민주주의자에 이르는 저명한 수감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관순 전시실은 특히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관순은 우리 집 근처의 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이었는데, 정치활동 때문에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런데 매우 특이한 사실은 전시관 2층 계단 상부에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웃는 얼굴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 재조명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는 수 많은 사람들, 특히 이곳의 주요관람객인 어린이들 가운데 이승만이 자신의 정적과 좌익 성향의 반체제인사들을 이 형무소에 수감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건물 앞에 있는 안내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형무소의 사용이 중단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나는 성인 방문객들의 경우 대부분이 일제 강점 시기 서대문 형무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지만 1945년에서 1987년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는 이곳에 설명되어 있는 대부분이 진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성 고문을 비롯하여 잔인한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뿐더러 일제의 잔악한 행위들을 축소하고 싶은 마음 또한 전혀 없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들은 한국, 일본, 심지어 캐나다에서도 기억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런 행위들이 1945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사실 역시 항상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거의 내내 한국에서 반체제인사들은 계속해서 햇빛이 들지 않는 감방에 수감되어졌고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죽어갔다.


균형 잡힌 역사의식 필요
나는 현대 한국사를 놓고 논쟁을 벌일만한 자격이 없다. 민족사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고 싶지도 않다. 민족사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 곧잘 이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민족적 자긍심이 항상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지금, 특히 그러하다.

일본의 일부 학교에서 20세기 초 일본이 자행한 잔악 행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일본사를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을 비판하는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보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해방이후 서대문 형무소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은 분명 거북한 일이다. 이는 민족적 자긍심을 깎아내릴지도 모르며, 나아가 반일 증오심을 무뎌지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길 꺼려하는 한, 한국인들 역시 “애국적 교과서”의 채택을 부르짖는 우익 일본인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역사 왜곡”은 왜곡당하는 사람들보다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더 해롭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일본 교과서의 최대 피해자들은 그것을 읽는 일본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쓴 성난 학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서대문 형무소 역사의 절반을 빠뜨림으로써 한국인들은 1945년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 글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 부미선 씨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