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의 첫날과 닭갈비
음식에 담긴 것은 영양분이나 다양한 맛과 향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음식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어떤 공간에서 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친밀감이 자리한다. 특히나 우리가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좋아하는 식 당들을 가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나아가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기 위해 세계를 여행할 때 이런 생각은 더욱 커진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내가 한국에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 간직한 감각과 기억, 의미를 반추해 보려 한다. 내가 처음 한국을찾은 것은 2002년 4월 23일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막 대학을 졸업한 나는 영어를 가르치러 매년 한국을 찾는 수많은 서양인 젊은이들 대열에 합류했다.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16시간 만에야 이른 아침 서울에 도착했다. 그날은 정신이 없었다. 시차 적응도 안됐고, 방향감각도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새로운 장소에 갓 도착한 사람의 전형적인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새 직장 동료들 중 모험심이 강한 한 명이 찾아와, “저녁 먹으러 가자구. 꼭 먹어봐야 할 것이 있어!”라며 나가자고 했다. 상상해보라. 둥근 테이블 가운데 딱 적당한 온도로 달궈진 커다란 철판이 놓여있다. 이내 음식이 나온다. 선명한 붉은 소스, 닭고기, 떡, 고구마, 양배추 위로 올려진 깻잎이 올려진 깻잎은 철판에 닿자마자 지글지글 익어가고 금세 매콤하고 맛있는 냄새가 강렬하게 퍼져 나온다.
그 냄새를 맡자 침이 고이는 한편으로, 얼마나 매울지 떨리기도 했다. 익은 닭갈비를 한 점 집어 맛을 본 나는 곧장 반해버렸다. 냄새는 강렬하지만, 떡과 닭고기의 식감이 섬세했다. 당연하게도 동료들은 닭갈비는 꼭 소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야 덜 맵기” 때문이란다. 또 다른 맛의 충격! 이번엔 강력하면서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런 맛이었다. 독했지만, 거북하지 않았다. 소주를 곁들여 우리가 쉴새없이 닭갈비를 먹고 있는데, 동료하나가 갑자기 말했다. “이제 그만 먹고 밥을 시키자.” 나는 그저 그 말을 따랐고, 곧 마지막 코스가 나왔다. 김을 뿌린 밥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식사는 좀 더 오래 이어졌고, 나는 매콤한 맛 사이에서도 느껴지는 오묘하고 독특한 김의 맛까지 즐길 수있었다.
물론 1960년대 후반에야 강원도 춘천에 등장한 별미인 닭갈비보다 한식의 전통이나 정수를 잘 보여주는 음식이 수백, 아니 수천가지는 더 있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한 바로 그날 맛본 이 음식은 내기억에 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새로운 감각에 눈뜨게 해주었으며, 한국의 일상적인 외식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닭갈비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아주 인기있는 외식메뉴였던 것이다. 나아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사람을 사귀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감각적 경험이 나를 한국 생활에 정착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낯선 땅 한국에 자리를 잡고 오감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체득하게 되었다.
KF 방한연구펠로우 겸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 조교수
프랜시스 L. 콜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