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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중 관계 모색

지난 6월 초에 개최된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 한중미래포럼에 참가하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온 중국전문가들의 식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기대를 가지며 경주에 갔다. 한국측에서는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대표로 하는 22명과, 중국측에서는 메이 자오롱(梅兆榮) 중국인민외교학회 회장을 대표로 하는 10명이 참가하였다. 경주회의 이후에는 부산, 거제도 등 한국의 명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중국측 참가자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제1회의에서 한·중 양국의 정치·경제정세, 제2회의에서 동북아지역 및 한반도정세와 새로운 국제질서, 제3회의에서 새로운 세기의 한·중협력 강화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필자는 전공과 관련이 있는 부분으로 주로 미국에 대응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속내를 음미할 수 있었다.

경주에서 개최된 제8차 한중미래포럼.

개화와 개명을 위하여 19세기의 우리 선조들은 ‘親中聯美’를 내세우며 중국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미국과의 연합을 통해 부국강병을 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조선은 이들에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자주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백년을 훌쩍 넘어 21세기를 맞이하는 한반도의 운명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북한은 아직도 ‘親中聯美’의 염원 속에서, 남한은 ‘親美聯中’으로 바뀌어 새로운 질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정녕 우리는 선조들의 고민을 넘어서 미국과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보다 자주적으로 이룰 수는 없는 것일까?

미국과 중국에게 한반도의 매력은 무엇인가? 미국이 동맹관계를 내세우면서 미사일 방어계획(MD)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때 아직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한국은 뚜렷한 입장표명을 보류하면서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불량국가로 분류된 북한을 목표로 하겠다는 미국의 MD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은 북한의 경계심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MD의 목표는 중국이라며 강한 불신감을 나타내며 이 계획에 반대하고 있는 중국의 심정도 한국은 헤아려야한다. 한국은 북한을 의식하며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미국과 중국을 함께 품으면서도 이러한 고달픈 처지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해야 하는 매력을 지니는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

21세기 급변하는 주변환경 속에서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대외정책으로는 한반도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중국과 미국의 상호 입장을 활용하는 ‘用中用美’로 상대방을 아우르고 감정적 교감을 나누면서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용인하게 하기 위해서는 동정심을 불러 일으킬 필요도 있다. 중국은 현재의 중·미관계 악화나 남북한관계 고착의 책임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부시행정부 등장이후 노골적으로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는데 한국이 이러한 중국의 반미감정에 편승하기에는 미국의 요구가 너무 거세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기본축으로 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미국의 입장만을 두둔하기에는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외면할 수 없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강경일변도로 할 경우 한국에서는 반미감정을 일으킬 뿐이라는 식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 중·미관계의 퇴보가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국가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꿰뚫어 양국에게 호소하면서 우리가 처한 시련을 이겨내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이번 포럼에 참가하면서 이제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면서도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중국과의 관계를 매우 세련되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21세기 동북아의 신동맹 형성 가능성이 대두하는 이 시기에 새로운 한·중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실천력과 동시에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상상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참가인원들 중에 좁은 의미의 중국전문가뿐만 아니라 보다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학계 전문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또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국과 미국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소장파 중국 및 미국전문가들을 보다 폭넓게 참가시켜 지속적으로 인맥관리를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