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국악단 동유럽 순회공연

필자는 지난 6월 13일부터 27일까지 국악실내악단 동유럽 순회공연을 위해 공연단과 함께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크를 다녀왔다. 현지 문화부 및 한국대사관의 협조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우리 음악이 낯선 동유럽인들에게 우리의 전통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문화교류 실무를 맡고 있는 필자에게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악기 중 중요 현악기의 줄은 명주실(silk fiber)로 꼬아서 만들고 관악기의 관은 대나무(bamboo)로 만들어진다. 즉, silk 와 bamboo에는 예로부터 인공적인 재료가 아니라 천연의 재료로 악기를 만들고, 나아가 자연의 소리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이름지어진 Seoul Silk and Bamboo Ensemble은 1995년 창단이래 이번 동유럽 순회공연을 위해 가야금 연주와 작곡으로 유명한 황병기 교수를 단장으로 김정수 용인대 예술대학원장(장구), 홍종진 이화여대 교수(대금 및 단소) 등 분야별 중견연주자들로 새로이 구성되었다.

가곡을 비롯하여 단소·생황 병주, 거문고/대금/가야금 독주, 설장구놀이, 민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동유럽 4개국을 순회하게 될 우리 공연단과 필자는 국내 항공사의 파업으로 인해 어수선하던 인천공항을 떠나 첫 공연지인 헝가리로 향하였다.

헝가리에서의 판소리 공연 모습.

우리가 순회했던 동유럽 4개국 대부분이 서유럽에 비해 공연 입장료가 저렴하고,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지만 공연을 관람하는 수준이 높아 우리 국악 공연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였다. 공연은 지금도 국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는 Arpas Goncz 전 대통령 내외를 비롯하여 헝가리의 고위공무원 및 외교사절단 등 주요인사가 참석하여 만원을 이루었다. 황병기 교수의 가야금 연주는 단연 돋보였고 설장구 연주에도 끊임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우리 음악의 우수성에 놀라워하며 세계적 수준의 한국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재단이 해외에서 이렇게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새삼 뿌듯했다.

그리고 첫 순회지인 헝가리에서의 성공적 공연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체크 공연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연장에 참석한 관객만을 대상으로 우리 국악을 선보이는 것은 한정된 공간인 만큼 우리의 노력에 비해 그 영향력도 제한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매스미디어의 덕을 톡톡히 본 곳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의 공연이었다. 루마니아에서는 공연 당일 국영 TV의 아침 생방송에 출연하여 우리 국악기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연주곡을 선보였는데, 저녁 공연에는 객석이 이미 꽉 찼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로 공연장은 발 디딜 틈 없었으며, 공연직전까지 계속된 현지 방송사들의 황병기 교수 인터뷰 경쟁은 정말로 대단하였다.

'Salon of the Arts 2001’ 축제가 한창이던 불가리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연 4일전에 있었던 총선에서 동구권 전 국왕으로는 처음으로 55년만에 옛 권좌를 되찾은 시메온 2세 내외가 참관하여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신정부 구성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첫 공식행사로 한국 국악공연을 참관한 시메온 2세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 온 한국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자연과 조화된 한국 고유의 독창적인 소리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공연단으로서도 매우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수 원장, 주불가리아 대사부인, 정현아,
김승의 주불가리아 대사, 시메온 2세 내외, 강권순, 황병기
교수, 홍종진 교수.

그러나 마지막 공연지인 체크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지쳐있는 기색이 역력하여 조금 걱정이 되었다. 외국에서 큰 탈이나 나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염려했던 바와는 달리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프라하 공연 당일 정대석 선생님의 거문고가 파손된 것이다. 리허설때까지도 몰랐는데 너무 건조한 날씨 탓인지 까닭 모를 금이 생기더니 현의 잡아당기는 힘으로 인해 점점 균열이 심해지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공연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행히 우리 대사관에서 구해 준 나무접착제가 있어 파손된 부분을 임시방편으로 붙이고 공연을 해야 했다.

순회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이런 저런 뒷정리로 분주하던 어느 날, 불가리아 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낭보가 날아들었다. 불가리아 ‘Salon of the Arts 2001’ 축제에서 우리 공연단의 국악공연이 외국공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는 것이다. 연례행사로 올해 6회째를 맞은 이 축제에는 미국, 러시아, 일본, 인도네시아, 독일 등 32개국에서 120여 개 팀이 참가하였는데 외국 공연단에게 수여하는 유일한 이 상을 우리가 받게 된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음악”을 접해보지 못했던 외국인들로부터 단번에 우리 국악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싶어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