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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콘텐츠] 웹툰, 존재 자체가 글로벌 표준

[디지털콘텐츠]웹툰, 존재 자체가 글로벌 표준

서은영(만화평론가))

‘K웹툰’이라는 단어가 자주 목격된다. 최근 세계적인 반향을 이끌고 있는 ‘K컬처’의 전 지구적인 문화적 흐름에 ‘웹툰’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런데 ‘K웹툰’이라는 용어는 어폐가 있다. 웹툰 자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면서 세계를 주도한 콘텐츠이자 명칭이기 때문이다. 굳이 ‘K’자를 붙이지 않아도 ‘웹툰’은 세계 만화사의 흐름과 생태계를 바꿔놓으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구축되어 그 명성을 높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웹툰’이라는 용어 때문에 수출이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주로 카툰(Cartoon)이나 코믹스(Comics)라는 용어가 관습화되었기에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는 세계인들에게 낯설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 용어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왔다. 그런 세계 시장에서 이제는 굳이 용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웹툰’을 사용하는 세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즉 웹툰이 여타의 콘텐츠와 다른 점은 작품 수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웹툰’은 매체 자체를 세계화시키고 그 표준을 정립하며, 디지털 만화 시장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웹툰의 글로벌 전환을 이끈 대표적인 장르는 ‘노블코믹스’다. 노블코믹스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을 의미한다. 노블코믹스라는 장르 역시 만화 시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명칭이다. 노블코믹스를 통해 웹툰의 해외 진출이 확장되고, 소비자의 향유와 제작 방식이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새로운 장르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가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계기 역시 노블코믹스였다. 게다가 노블코믹스는 웹소설과 웹툰 시장을 동반 성장시키면서 IP(Intellectual property)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표준을 제시한 셈이다. 노블코믹스의 글로벌화는 번역의 어려움으로 좀처럼 해외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던 웹소설 분야의 해외 수출에도 발판을 마련했다.


노블코믹스의 성공 가능성이 가시화된 것은 2016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가 중국 플랫폼 ‘텐센트 동만(腾讯动漫)’에서 한 달 만에 1억 뷰를 달성하며 유료 웹툰 분야 1위에 올라선 것을 시작으로, 2017년 1월에는 <황제의 외동딸>이 또다시 한 달 만에 1억 뷰를 기록했다. 수많은 성공 사례 중에서도 오늘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는 것은 단연코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2016년 7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동명의 웹소설을 2018년 노블코믹스로 공개하자 국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이 반응은 해외로도 이어졌다. ‘만화 강국’ 일본에서는 단숨에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천문학적인 수익을 발생시켰고, 독일과 브라질, 북미 시장을 비롯해 전 세계 17개국에 수출하는 그야말로 웹툰계의 ‘레전드’가 됐다.


그렇다면 노블코믹스가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화려한 그림체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꼽는다. 이 부분은 워낙 많은 지면에서 다루어 왔기에 나는 여기에 다른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바로 전 세계인이 처한 재난자본주의 위기의 한편에 신자유주의 주체들의 즉자적인 욕망의 공감 서사가 노블코믹스를 향유하는 즐거움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캐릭터로 등장하는 ‘먼치킨’은 이것을 은유한다.


‘먼치킨’은 그 유래가 어떻든 노블코믹스 안에서는 경쟁의 우위를 점하며 최종 승자가 된다. 그들은 회귀, 빙의, 환생 클리셰를 반복하며 인생 N회차를 살아본 경험으로 남들보다 미래를 앞설 수 있다. 때로는 ‘템빨’을 독점하거나 상대의 아이템을 훔쳐보는 특전을 획득함으로써 경쟁의 우위를 점한다. 먼치킨에게는 파국의 가능성은 없고, 특별한 기능으로 가속화한 성공만이 유일하다. 하지만 대단히 불공정하고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웹툰을 읽는 독자는 이들 캐릭터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며 공감한다. 먼치킨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이 명백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 속에 놓인 신자유주의 주체들의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생의 피로함과 불완전한 고용으로 인한 불안정한 삶,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되는 계층 구조는 웹툰의 주독자층인 청년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의 청년들이 BTS의 메시지에 공명하고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을 재난자본주의의 문화적 코드로 읽어내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웹툰은 독자의 욕망을 읽어내 즉자적인 즐거움을 대리 체험케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적 서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웹툰이 오늘날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초국가적으로 공명하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웹툰이 글로벌화할 수 있었던 특별한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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