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에서 한국실 개관기념 행사가 열렸다. 2009년 박물관과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한국실 설치협약을 맺고, 2010년부터 설계를 시작해 드디어 한국실 문을 열었다.
무기고 박물관의 창고가 한국실로 변하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의 한국실 책임자 메테 지그스테드 박사가 2009년 말 내한해 필자의 회사를 한국실 설계자로 선정했다. 2007년 이후 유럽을 순회한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 현대건축전’의 전시를 디자인한 것과 전통건축 경력 등이 선정이유였다.
박물관은 ‘북구의 베니스’로 불리는 스톡홀름의 수많은 섬 중 하나인 솁스홀멘에 있다. 현대미술관, 건축박물관, 국립미술관 등과 인접한 좋은 위치였다. 박물관 건물은 니코데무스 테신이 18세기에 개축한 것으로, ‘Tyghuset(무기고)’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당시 스웨덴 해군이 사용했다고 한다. 길이는 200미터에 달하지만 폭이 9미터로 박물관 건물로서는 제약이 많다.
지난 2010년 5월 방문했을 당시, 소장품은 압도적으로 중국 비중이 높았고 한국실이 설치될 공간은 131.64㎡ (40평 정도)의 창고였다. 복도와 49센티의 높이차가 있어서 전체 면
적의 4분의 1 정도가 장애인 경사로로 할애되어야 했고, 관람 동선의 끝에 위치하며 공교롭게도 중국실이나 일본실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유물도 별로 없고, 위치도 나쁘고, 면적도 작고, 법규도 까다로운 상황이었기에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역으로 이용해야 했다.
스웨덴에 한옥의 빛을 가져오다
한국실 디자인에 대해 ‘독창적 친밀함(Uniquely Intimate)’이란 주제를 잡았다. 한국과 스웨덴 모두 자연을 사랑하며 전통적으로 건축에 목재를 많이 사용한다는 등 두 나라의 공통 정서에 입각한 공감 요소가 중요했다. 예를 들면 한국실 곳곳에 벤치를 설치해 라디에이터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좌식의 눈높이에서 유물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흥미롭게도 북유럽에는 좌식문화가 있다. 의자 높이도 낮아서 반 좌식이라 할 경우도 많고, 집 안에서는 신을 벗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빛이었다. 한국 유물의 시각적 자극이 약해서 전시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으나, 오늘날 이러한 저자극적 특성은 오히려 매력적이다. 한국 초상화의 경우, 서양 기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입체감이 없었다. 원근법은 물론이고 음영 또한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유물들은 무방향성의 균일한 빛 속에서 봤을 때 그 느낌이 살아난다. 그런 빛을 만들기 위해 천장의 노출된 목제 보 위에 간접 광을 설치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빛을 통해 외부와 교감한다.’는 이유를 들어 막혀 있던 세 개의 남쪽 창을 뚫어달라고 요구했다. 새 창에 한국산 창호지를 바른 창을 설치해 매우 독특한 빛을 연출했다. 그것은 한옥 내부의 부드러운 빛이면서 동시에 스웨덴 설원의 달빛을 연상케도 한다.
유물을 이해하며 배치하다
박물관은 자국 건축가가 아닌 한국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한 가장 큰 이유로 ‘유물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꼽았다. 그러면서도 한옥을 그대로 옮겨 짓는 직설적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필자의 팀은 학예사들과 함께 한국 유물 전체를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말기의 화가 채용신의 작품인 정성근의 초상화가 한국실의 핵심적 전시물이 되었다. 초상화를 중심에 두고 주변에 다른 유물을 배치해 한 개인의 공간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한국 문화의 친밀하고 개인적인 성격을 강조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정해진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거닐 듯이 끊임없이 방향과 시선의 변화를 경험한다. 해남의 윤택 고택에서 이러한 배치의 기본 개념을 응용할 수 있었다. 또 서봉총에서 발굴된 것으로 전해지는 신라의 금귀걸이 등 몇몇 유물에 대해서는 그 유물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발하는 의미에서 한국실 입구에 배치했다.
절제로 한국의 문화를 나타내다
스웨덴 유력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에는 “한국 건축가 황두진에 의해 설계된 한국실은 전시물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예술작품이다. 한국실은 크지도 않고 유물도 많지 않지만, 애호가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시간씩 머물 수 있을 것이다.”라는 평론이 실리기도 했다. 어떤 박물관은 압도하려고 하고, 어떤 박물관은 계몽하려고 한다. 한국실은 이들과 달리 친밀함과 편안함이 담겨 있는 공감, 절제의 디자인을 꾀했다. 위의 평론처럼 현지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잘 이해하는 듯하다. 한국실이 한국 문화에 대한 차분하고 지속적인 관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황두진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