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을 뒤로 하고 중국으로 걷다
모든 계절에는 언제나 끝이 있고, 계절의 끝에서 꽃은 시들기 마련이다. 닫힌 문 앞에 서서 망연자실 그 문을 바라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디에든 끝이 있다는 걸. 나의 중국여행은 그 닫힌 문 앞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베이징 공항, 누군가가 옆에서 역시 중국은 산이 없다고 말을 해줬다. 정말이었다. 탁 트인 시야에 어딜 봐도 시선에 걸리는 곳이 없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하늘. 그때부터였던것 같다. 내가 자유로워진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서 비로소 나는 편안하게 다른 이들의 삶을 더 많이 들여다보았다.
서울에서의 나를 내던지고, 만리장성에서는 봉화를 올리기 위해 그 어딘가의 장벽을 열심히 올랐을 일개 병사의 심정이기도 했다가, 자금성에서는 조선 사신의 짐을 짊어지고 그 뒤를 쫓아왔을 행랑아범의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 거대한 풍경 앞에 그는 얼마나 작아졌을까? 그런 낯선 풍경 속의 나와 마주하는 동안 나는 내 마음밭의 장막을 거두고 온몸으로 햇빛을 맞았다. 와이탄의 야경 앞에서 나는 중국을 향해 약속했다. 꼭 이곳에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삶은 늘 어딘가에 빚을 지고 사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또 한 번 이렇게 빚을 졌다.
다시 일상이다. 채워야 할 빈 페이지는 내 앞에 가득하고 내 안에는 심어놓은 이야기들이 싹트고 있다. 사람과 삶은 이렇게 돌고돈다. 나는 또 이렇게 어딘가를 향해 가겠지. 그래도 이 마침표만은 마침표라고 믿고 싶지 않다. 어딘가에 이 마침표에서 연결된 또다른 길이 있겠지. 나는 그 길을 향해 다시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