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공간인가? 갈등 공간인가?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박사 이주연
중앙아시아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자원의 가치와 지정학적 가치는 이미 세계 강대국에 중요한 관심사이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은 중앙아시아 주변 강대국을 포함하여 신거대게임(New Great Game)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전통적인 뒷마당으로 인식하고 있는 러시아와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높이고 있는 중국은 전략적 협력을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퇴출시키려는 견미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이에 2014년 마나스 공항 폐쇄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거의 상실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퇴출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통적 패권국가인 러시아와 이를 위협하는 중국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발생시켰다. 즉, 공동의 적인 미국이 없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미묘한 갈등 관계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외 학자들은 속도와 강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 사이 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2014년 말부터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이와 같은 영향력 확대는 기존에 러시아 경제 영향력을 대체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중국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는 러시아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러시아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이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보다는 오히려 확대를 다소 인정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협력점을 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갈등의 공간인가? 혹은 협력의 공간인가?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은 행동경제학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전망이론 관점에서 인간은 이익을 중시하는 선택을 추구하는 경향보다 손실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이익의 상황 속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선택을 실시하고, 손실의 상황 속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미래에 예측되는 상황이 터무니없는 손실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 ‘선호역전(Preference Reversal)현상’이 발생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손실을 선택하거나 위험을 회피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5개 국가들의 2000~2010년까지의 평균 수출 비중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5%였고,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6.1%로 2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2011~2019년까지 평균 수출 비중에서 러시아는 8.45%로 감소하였고, 중국은 23.8%까지 증가하였다. 중국의 투자 금액도 마찬가지로 2007~2012년 동안 평균 투자금액은 0.5% 증가세를 보였지만, 2012~2018년 동안 평균 투자금액의 증가율은 10.7%로 증가했다. 즉, 전망이론 관점에서 중국의 경제 영향력의 확대는 러시아에 있어서 영향력 하락이라는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 하락보다 더 큰 국내·외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한 세계 유가 하락은 러시아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2014년 크림 병합으로 인한 서방의 대러 제재는 러시아 경제성장을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유가하락과 대러 제재는 러시아 경제 불안과 서방으로부터 나타나는 고립의식을 높이는 국내·외 손실 요인으로 작용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확대로 인한 손실과 국내·외 손실 요인이 동시에 발생했다. 따라서 서방과의 첨예한 갈등 상황을 이끌어 가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은 러시아로 하여금 재앙과 같은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는 서방과 중국과 동시에 갈등적 관계가 구축되는 재앙적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선호역전 선택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용인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결국 러시아의 비교적 작은 손해를 감수하려는 위험 회피 전략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사이의 갈등의 공간이 아니고, 오히려 협력의 공간으로 구성된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 말기인 2020년 미국은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을 증진하는 ‘중앙아시아를 위한 미국전략 2019-2025’를 발표했고, 2021년 바이든 당선 이후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전방위에 걸친 압박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중국도 러시아와의 갈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협력을 추구하여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협력의 공간이자 두 국가 사이의 협력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는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공간에 대해 어떤 접근을 실시해야 하는가? 우리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고민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국내·외 문제로 인해 중국과의 협력을 증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러시아에 손실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자본 침식이라는 손실을 막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러시아는 한국과 같은 제 3국의 경제 참여를 통해 중국의 경제 영향력 확대를 어느 정도 억제하려는 의중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즉, 한국의 영향력 확대라는 손실이 더욱 작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참여를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공간 창출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한국 진출의 위기 요인이 아니고, 오히려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