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I 가스관을 둘러싼 새로운 지정학적 게임
윤성학
2021년 7월 1월, 미군이 한밤중에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전격 철수 이후 45일 만에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탄생했다. 탈레반 정권은 안정과 재건을 주장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의 이 가난한 나라에는 먹고 살 것이라고는 마약과 건설 중인 TAPI(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 가스관밖에 없다. 마약은 주변 국가의 감시로 과거 미국 치하에서처럼 대규모 수출은 불가능하다. 탈레반 정권의 미래는 TAPI 가스관에 달려 있다. TAPI 가스관은 아프가니스탄 횡단 가스관(Trans-Afghanistan gas)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중반 투르크메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양국을 잇는 가스관 건설협력협정에 서명했는데, 이 노선은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통과해야 했다. 2008년 4월, 인도가 이 가스관을 자국까지 연장하겠다고 제안하면서 TAPI로 불리게 되었다. 이 가스관은 세계적인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한다는 의미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가스관, 혹은 ‘실크로드의 현대적 연속(a modern continuation of the Silk Road)’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TAPI 가스관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남동 지역에 있는 갈쿠누쉬(Galkynysh) 가스전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 남부 헤라트와 칸다하르, 파키스탄의 퀘타와 물탄을 지나 인도 펀자브주의 파질카로 향하는 1814km에 이르는데, 매년 약 33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운송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이 천연가스의 산출량을 140억 입방미터로 똑같이 나누어 갖고 아프가니스탄은 통과 운송료와 나머지 가스를 사용할 예정이다.이 가스관 건설을 위해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은 2005년에 25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2018년에는 애초 예측보다 3배 이상 많은 76억 달러를 책정했다. 2020년 이 가스관의 최대 주주(85%)인 투르크메니스탄의 국영가스사인 Turkmengaz는 건설 비용을 최대 1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가스관 건설 비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리스크다.TAPI 가스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은 가스관의 안정을 보장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과 통제가 가스관 건설과 운영의 전제 조건이었다. 1990년대 후반,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 정권이 집권하면서 TAPI 가스관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탈레반을 제거하자 이 프로젝트는 다시 시작되었다. 2002년 5월,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의 대통령들은 세 국가를 잇는 가스관 건설에 협력하기로 한 협정에 서명했다. 2015년 12월 13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본격적으로 건설이 시작되어 2019년 중반까지 완료를 제시했지만 이후 아프간 내전이 확대되면서 가스관 건설은 중단된 상태이다.흥미로운 사실은 탈레반이 TAPI 가스관의 안정적 건설과 운영을 보장했다는 점이다. 2021년 2월, Mullah Abdul Gani Baradar가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은 투르크메니스탄을 깜짝 방문하여 가스관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탈레반은 TAPI와 같은 국가 기반 시설 프로젝트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TAPI를 아프가니스탄 경제 인프라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자신들이 통제하는 지역에서 안전을 제공하고 협력하겠다는 것이다.그렇지만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의 가스를 인질로 삼은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TAPI 가스관 또한 건설 이후 탈레반의 인질이 되어 인접국 투르크메니스탄과 파키스탄, 인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이란이 한 다리를 걸치고 나왔다. 가스 대국인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을 우회하여 파키스탄을 경유하는 IPI 가스관(Iran–Pakistan–India gas pipeline)을 인도에 제안했다. 문제는 이란이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어 인도가 쉽사리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중국과 러시아도 불안정한 TAPI 가스관을 대체하는 자국산 프로젝트를 은근히 내밀고 있다. 중국은 이미 4개의 대형 가스관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연간 무려 연간 550억 입방미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는데도 TAPI 가스관의 물량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과거 투르크메니스탄 가스의 최대 수입국인 러시아 또한 2019년 3년간의 수입 중단 이후 다시 물량을 받고 있는데, 가스 수입 확대를 희망한다.TAPI 가스관이 본격화되면 아프가니스탄 지정학의 새로운 참여자는 인도가 된다. 인도는 비록 TAPI 가스관의 지분(5%)이 작고 물량도 파키스탄과 반으로 나누어지지만, 이 가스관이 안정화되면 신규 물량의 수요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한다. 애초 중앙아시아-중국 가스관이 두 개로 시작해서 네 개로 확대된 것처럼 TAPI 가스관도 서너 개가 추가 신설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인도는 아프가니스탄 정세를 안정시켜야 해서 제국의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TAPI 가스관의 건설과 운영은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척도이다. 탈레반이 가스관 공사를 지원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내정은 안정화되고 탈레반을 바라보는 불안한 국제적인 시선도 줄어들 것이다. 탈레반의 배후 세력인 파키스탄이 자국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 때문에 TAPI 가스관에 큰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긍정적 요소이다. 반대로 거의 3/2 구간이 완성된 이 가스관이 탈레반의 인질이 되어 고철 덩어리가 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에너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의 새로운 게임이 유라시아에 출현할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