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은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관광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급속한 상업화로 홍대 지역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홍대 앞 명소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홍대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홍대 앞 초입(홍익로3길)에 자리한 호미화방은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1987년부터는 창업자의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손자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호미화방의 로고는 1970년대 후반, 단골이었던 홍익대학교 대학원생이 ‘미술은 영원하다’는 의미를 담아 디자인해 주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일대는 법정동인 서교동보다 ‘홍대 앞’이라는 단어로 더 익숙하게 불리는 곳이다. 1990년대 이후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이 지역이 각광받게 된 데에는 인디 뮤지션들의 역할이 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디 문화의 부흥과 더불어 골목 구석구석 들어선 카페와 클럽, 문화 공간들은 홍대 앞을 수십 년간 인디 문화와 젊은 감각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일조했다.
그러나 여타 지역이 그랬던 것처럼 홍대 앞도 임대료 인상과 그에 따른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상권이 활성화되고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홍대 앞의 개성을 만들어 온 많은 예술가와 공간들이 주변 지역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이 들어섰다.
그래서 혹자에게 홍대 앞은 이제 상업적인 분위기만 풍기는 번화가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홍대 앞 곳곳에는 여전히 고유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닌 공간들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지역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홍대 앞 터줏대감 중 하나인 수(秀)노래방 전경. 1999년 오픈한 이곳은 기존 노래방들과는 다른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며 성장했다. 2005년 MBC가 방영한 인기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My Lovely Sam Soon, 我叫金三顺)>에서 주인공 남녀가 노래를 부른 장소로 알려지며 더욱 유명해졌다.
예술인들의 사랑방
1990년대 이후 홍대 앞이 인디 문화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전부터 형성된 이 지역 특유의 예술적인 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의 중심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이 있었다. 홍익대학교 미대생들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교류하며 만들어 낸 독특한 문화가 인디 밴드와 클럽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1975년 개업한 호미화방(Homi Art Shop)도 홍대 앞 미술 문화의 산증인으로 현재까지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영업하고 있다. 호미화방은 반세기 동안 다양하고 질 좋은 미술 재료를 공급하며 한국 미술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 2020년에는 서울미래유산(Seoul Future Heritage)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호미화방이 단순히 화방으로서의 가치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호미화방에 가면 인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다”라는 예술인들의 인식이 이곳을 홍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동력이었을 것이다.
신천지를 펼친 LP 바
1990년대 홍대 앞을 추억하는 뮤지션들과 음악 애호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장소가 하나 있다. 바로 블루스 하우스(Blues House)다. 홍대 앞에 인디 문화가 태동한 시기에 이곳도 문을 열었다. 블루스 하우스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세련된 공간 구성과 음악 선곡으로 금세 홍대를 대표하는 바(bar)로 자리매김했다. 오로지 이곳에 가기 위해 홍대 앞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당시 주목받던 한 소설가의 장편소설 배경이 되기도 했다.
20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뮤지션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블루스 하우스. 그러나 지난 2016년 임대료 상승과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야만 했다. 추억의 이름이 될 뻔만 이곳이 2020년 다시 문을 열며 역사는 현재진행형이 됐다. 오랫동안 영업한 서교동을 떠나, 망원동에 새로 둥지를 튼 것이다. 예전과 동일한 서체의 간판과 빼곡한 음반, 변함없는 분위기가 오랜 단골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 세대를 반기고 있다.
ⓒ NAVER Blog Jinnie
음악 문화의 계승
최근 젊은 층들 사이에서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 먹거리부터 패션, 음악 등 삶 전반에서 과거의 유행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레트로 바람을 타고 추억 속 제품들도 다시 각광받는다.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바이닐(vinyl), 레코드판도 그 바람을 타고 힙한 굿즈로 관심을 끈다.
올해로 개업 11주년을 맞은 김밥레코즈(Gimbab Records)도 홍대 앞 명소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연남동 골목의 작은 공간에서 2013년 문을 연 김밥레코즈는 오프라인 음반 매장을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 음반을 직접 고르고 구매할 수 있는 드문 장소였다. 김밥레코즈의 탄생은 인디 뮤지션과 클럽으로 자생한 홍대 앞 음악 문화 계승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곳을 필두로 인근에 여러 레코드숍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관련 공연과 문화 행사들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열리고 있는 마포 바이닐 페스타(Mapo Vinyl Festa)도 그중 하나다.
홍대 앞에 탄탄한 바이닐 문화가 형성되면서 김밥레코즈도 2년 전 동교동의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했다. 김밥레코즈는 이곳에서 음반 판매뿐만 아니라, 해외 음반 수입, 소규모 레이블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홍대 앞 음악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김밥레코즈는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바이닐 레코드 매장으로, 국내외 뮤지션들의 공연도 기획해 진행한다. 10년 넘게 서울레코드페어(Seoul Record Fair)도 주최하고 있어 국내 바이닐 레코드 시장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논텍스트(NONTEXT), 사진 김동규(Kimdonggyu)
소극장 문화의 산실
소극장 산울림(Sanwoollim)은 올 초 타계한 원로 연출가 임영웅(林英雄)이 극단 산울림의 전용 극장으로 1985년 개관한 10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 고도를 기다리며 >를 한국에서 초연하며 이름을 알린 극단 산울림과 소극장 산울림은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올리며 전성기를 맞았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 위기의 여자 >, 드니즈 살렘(Denise Chalem)의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 등의 공연은 그때까지 문화예술계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중장년층 여성들을 극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0~90년대에 이어진 소극장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이곳은 여전히 젊은 연출가들의 실험적인 무대를 지원하는 연극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랜드마크로 홍대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985년 개관한 소극장 산울림은 고전 작품의 깊이 있는 해석, 젊은 연출가들의 실험적인무대를 보여 주며 홍대 앞에 또 하나의 랜드마크를 추가했다. 최근에는 건물 1~2층에 갤러리와 아트숍을 마련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대표적 약속 장소
1990~2000년대 인디 문화가 한창이던 시절, 홍대 앞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반면 최근의 홍대 앞은 주변의 상수동, 연남동, 망원동까지 훨씬 더 넓은 권역을 의미하게 됐다. 높아진 임대료 탓에 여러 상점과 공간들이 인근 지역으로 밀려난 탓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덕에 홍대 앞은 특정 대학가의 상권 자체를 지칭하기보다 더 넓은 지역과 그곳에서 공유되는 특유의 정서를 상징하는 말이 될 수 있었다.
리치몬드과자점(Richemont Patisserie)은 한때 홍대 앞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홍대 앞을 지키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범홍대권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불린다. 1979년 문을 연 성산동 본점에 이어 1983년 홍대점을 오픈한 리치몬드과자점은 지난 2012년 임대료 상승과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의 인기에 밀려 30년간 이어온 홍대점 영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4~5년 전 동네 빵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성산동 본점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서울 3대 빵집’으로 불리며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밤식빵과 슈크림빵으로 대표되는 변치 않는 메뉴에도 있지만, 서교동 시절부터 켜켜이 쌓아온 홍대 앞의 추억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