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과 간장, 참기름을 메인 식재료로 끓이는 미역국은 싱싱한 미역이 주는 식감과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는 국물이 만나 바다의 풍미를 자아낸다. 미역국은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태생부터 한국요리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출산한 산모의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미역국은 한국인의 출생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짭짤하다는 말은 대부분 맛깔스러운 감칠맛을 설명할 때 쓴다. 짠맛의 정도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을 잘 맞췄을 때 한국 음식은 감칠맛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절한 짠맛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한 한국의 국물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미역국이다.
친근하고 특별한 음식
한국인에게 미역국은 친근하고 다정한 음식이다. 메인 식사로, 때로는 술안주나 다이어트식으로도 즐겨 먹는 대중 음식이기도 하지만, 미역국이 친근하고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에서는 산모가 출산하면 식사로 미역국을 챙겼다. 왜 하필 미역국이었을까? 미역은 단백질과 당질, 섬유질, 칼슘, 비타민 A, 칼륨, 셀레늄 등을 비롯해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미역의 철분과 요오드 성분은 몸속 혈액의 원활한 흐름을 돕고 높은 철분 함유량으로 빈혈 예방에 탁월하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산모가 출산하면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통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한국 사람들을 생일이 되면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미역국을 나누어 먹으며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한국의 풍습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역국 먹기를 꺼리는 날도 있다. 시험을 보는 날과 면접을 보는 날이다. 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뜻으로 쓰이는‘미역국 먹다’라는 말이 국어사전에도 있을 정도로, 이 두 날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끈거리는 미역국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조리법
미역국의 레시피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재료는 마른미역과 소고기, 조선간장, 참기름, 그리고 소금 정도만 있으면 된다. 마른미역은 물에 넣고 충분히 불린 다음 물기를 짜고 4~5cm의 길이로 자른다. 소고기는 메인 재료라기보다 고소한 풍미를 살려주는 토핑 개념으로, 가로세로 1~2cm 크기로 작게 자른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후 준비한 소고기와 미역을 넣어 겉면이 익을 때까지 볶는다. 이때 미역과 소고기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고소한 참기름과 어우러지면서 맛깔스러운 향을 뿜어낸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여기에 물을 추가로 넣은 다음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30분 이상 끓여주면 완성이다. 물은 생수를 넣어도 되지만 더욱 진한 맛을 내려면 멸치로 우려낸 육수나 쌀뜨물, 또는 사골국물(소뼈를 장시간 우려 만든 국물로 묵직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을 넣으면 된다. 미역국에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면 풍미가 더 살아나는데 미역과 소고기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싶다면 생략해도 좋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재료로 만든 것이며, 지역 환경이나 특산물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오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
미역 특유의 오독오독하면서도 미끌미끌한 식감과 짭짤한 국물, 고소한 소고기와 만나면 그 감칠맛이 배가된다. 미역은 해초의 일종인데 바닷속에 살면서 바다 향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바다의 짠맛과 비릿한 맛이 강하게 난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은 후 물에 불리는 과정을 통해 짠맛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가 은은한 바다의 맛과 향만 남는다. 미역을 소고기와 함께 참기름에 볶고 또 물에 끓이는 동안 각 재료의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미역국은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욱 살아난다. 끓인 후 바로 먹을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먹을 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뜨끈한 미역국에 달게 지은 흰 쌀밥을 말아 맛있게 담가 푹 익힌 김치를 올려 먹으면 그 자체로 한 끼 보약이 된다. 뜨겁고 묵직한 감칠맛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면서 또 가장 익숙한 맛이다.
미역국처럼 미역이 메인 재료가 되는 국물 요리는 한국에만 있는 전통음식이다. 다른 나라에선 구경조차 어렵다. 간혹 일본에서 미소된장국에 미역을 넣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소량인 데다 어디까지나 된장이 메인이지, 미역이 주인공인 메뉴는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미역국은 외국에선 다소 생소한 음식으로 통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 레스토랑 두레유를 운영 중인 토니 유 셰프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해외 각국의 유학생들 모두 미역국을 보곤 “이 시커멓고 미끄덩거리는 이상한 물체는 무엇이냐?”라며 질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맛을 본 후로는 “앙코르 미역국”을 요청했다. 그들에게 미역국은 생소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 있는 맛있는 미역 스튜였던 것이다.
산모 미역이라 불리는 미역은 바다에서 갓 채취해 해풍과 햇볕으로 말린 것을 말하며, 억세지 않고 진한 국물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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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로 특색 있는 미역국
한국의 국물 요리는 그 종류가 무엇이 됐든 대체로 지역마다, 가정마다 먹는 형태나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지역별 특산물이 다르고 집마다 즐겨 먹는 재료 또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넣는 것이지만 소고기 대신 바지락이나 동죽, 홍합과 같은 조개류를 넣기도 하고 가자미나 꽁치, 갈치 등의 생선 종류를 넣기도 한다. 그야말로 육해공을 어우르는 국물 요리인 셈이다.
꽁치 요리를 즐기는 울릉도에서는 소고기 대신 꽁치를 넣은 꽁치 미역국을 먹는다. 이때 꽁치는 살만 발라내 녹말가루, 달걀물 등의 재료와 함께 반죽한 후 작은 볼 형태로 만들어 국물에 넣는 것이 특징이다. 꽁치는 다른 생선에 비해 지방이 많지 않고 고소해 미역국에 넣었을 때도 전혀 비리지 않고 오히려 담백한 매력이 있다.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선 새알 미역국을 먹는다. 새알은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말아 반죽한 것으로 쫀득거리는 새알의 식감과 미역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제주도 지역으로 가면 성게알을 넣고 끓인 성게알 미역국이 있다. 자연산 성게알은 한국에서 매우 귀한 재료로 통하는데, 마치 푸딩을 먹는 것처럼 크리미하면서 특유의 신선하고 짭짤한 바다의 향이 가득해 제주도의 성게알 미역국은 일반 미역국과 다르게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밖에 북어(생선 명태를 말린 것)를 넣은 북어 미역국,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넣은 닭고기 미역국, 갈치를 넣은 갈치 미역국, 새우를 넣은 새우 미역국 등 한국에서 먹는 미역국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변주
미역국의 종류가 다양하고 한국인이 오랫동안 즐겨 먹은 것에 비해 한국에 미역국 전문식당이 많지 않은 건 아이러니하다. 아무래도 미역국은 가정에서 쉽게 끓여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외식 아이템으로서는 비교적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는 미역국 맛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반적인 소고기 미역국 대신 특별한 재료를 넣은 미역국을 선보인다. 그중 가자미 생선을 통째로 넣어 압도적인 비주얼을 살린 가자미 미역국, 고급 재료인 전복을 넣은 전복 미역국, 소고기 중에서도 매우 귀하고 비싼 부위로 통하는 차돌박이를 가득 담아낸 차돌박이 미역국 등이 인기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물도 일반 생수 대신 다양한 조개류와 육류를 넣고 오랜 시간 끓인 육수를 사용해 맛이 훨씬 풍부하고 진하다. 평범한 미역국이지만 색다른 재료와 특별한 육수를 조합하니, 또 하나의 새로운 요리로 탄생한 것이다.
혹시나 한국에 방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미역국을 맛보길 바란다. 시커멓고 미끄덩한 미역의 모양새가 낯설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뜨거운 미역국에 갓 지은 찰진 밥을 말아 한 그릇 든든하게 비우고 나면 이만큼 귀한 음식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