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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 상세화면

2024 AUTUMN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즐거움

세이수미(Say Sue Me)는 2012년 결성된 4인조 록 밴드이다. 부산 광안리에서 출발한 이들의 음악은 동시대 한국 록 밴드 음악의 최전선에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제 지역과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무대를 향하고 있다.

세이수미는 2023년 10월 <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Tiny Desk Korea) >에 출연해 < Old Town > 등 대표곡들을 불렀다. 지난해 8월 출항한 이 프로그램은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 뮤직이 진행하는 <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s) >의 한국판 버전이다.
ⓒ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한반도 남동쪽 끝에 자리한 부산은 서울에서 약 400㎞ 떨어져 있는 국내 최대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라 일컬어지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Shinsegae Centum City)가 우뚝 솟아 있는가 하면 서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수산 시장도 있다. 수십만 원대의 코스 요리로 유명한 5성급 호텔이 서울과 제주 다음으로 많은 곳이지만, 저렴한 시장 음식이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 말투와 달리 억양에 높낮이가 약간 있는 부산 말씨를 쓰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록 밴드 세이수미가 있다.

보컬과 기타의 최수미(Sumi Choi, 崔守美), 리드 기타의 김병규(Byungkyu Kim, 金秉奎), 베이스의 김재영(Jaeyoung Kim, 金才永), 드럼의 임성완(Sungwan Lim, 林性完). 네 명의 멤버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화요미식회’를 진행한다. 리처드 오스먼의 범죄 소설 『목요일 살인 클럽(The Thursday Murder Club)』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들만큼은 아니지만, 이날은 멤버들 사이에 긴장감이 꽤 흐른다. 화요미식회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인기 먹방(mukbang) 프로그램 <수요미식회(Wednesday Food Talk, 周三美食彙)>(2015~2019)에서 따온 이름이다. 저녁 식사로 먹고 싶은 메뉴를 각자 정한 뒤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된 최종 승자가 결정권을 갖는 일종의 회식 배틀이다. 이들은 때로 신경전을 펼치기도 하지만, 모두를 평화로 인도하는 공통적인 선호 메뉴가 있다. 다름 아닌 돼지국밥이다.

세이수미(Say Sue Me)는 부산 출신의 4인조 인디 록 밴드로,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독자적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인다. 2012년 팀을 결성해 2년 후 1집 < We’ve Sobered Up >을 발매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영국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와 계약을 맺고 첫 해외 투어를 성공리에 마쳤다.

광안리 서프 록

해운대(海雲臺)와 함께 부산이 자랑하는 대표적 휴양지인 광안리(廣安里) 해수욕장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작은 동네 골목. 한 건물의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100㎡쯤 되는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세이수미의 아지트이자 연습실, 녹음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DIY 방식으로 운영하는 비치 타운 뮤직(Beach Town Music) 레이블의 사무실이기도 하다. 2012년 결성 이래 세이수미는 지금껏 이 자리를 지켰다. 멤버들은 음악 연습을 하다가 지치거나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3분쯤 내리막길을 걸어 바닷가로 향한다. 그러고는 함께 맥주를 마시곤 한다.

그룹명 세이수미는 보컬 최수미의 이름에서 따왔다. 초기에 그들은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펍에서 공연하며 한 명씩, 두 명씩 팬을 늘려 갔다. 그룹명 중 ‘수미(Sue Me)’를 “Sue me”로 읽은 이방인들에게 이들은 꽤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최수미가 쓰는 영어 가사는 문법적으로는 어색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귀엽게, 한국인들에게는 힙하게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광안리 밤바다의 파도 소리처럼 조금 지글거리면서도 몽환적이고 청량하기도 한 사운드가 이 밴드의 매력이었다. 누군가는 광안리 앞바다에 ‘서식’하는 이 그룹의 음악에 ‘서프 록(surf rock)’이란 장르명을 붙여 줬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의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나 딕 데일(Dick Dale)이 구사한 대서양 연안의 서프 록과는 확실히 다르다. 드림 팝(dream pop)이나 슈게이즈(shoegaze)의 꿈결 같은 소릿결, 인디 팝(indie pop)의 속삭이는 듯한 수줍은 태도, 때로는 펑크 록(punk rock)의 무모한 질주감까지 오가는 세이수미의 음악은 한두 가지 장르로 못 박기 힘들다.

터닝 포인트

“2014년 발표한 1집 < We’ve Sobered Up>은 광안리 출신 록 밴드나 서프 록 밴드라는 외부 시선을 어느 정도 의식하며 제작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그때그때 와닿는 메시지와 사운드에 집중하면서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김병규의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2018년 발매한 2집  < Where We Were Together >는 세이수미의 커리어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수록곡 중 하나인 < Old Town >은 영국의 전설적 싱어송라이터 엘턴 존이 자신의 팟캐스트 ‘엘턴 존의 로켓 아워(Elton John’s Rocket Hour)’에서 극찬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세이수미는 그해 월드 투어‘Busan Calling!’을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에 이들은 미국의 유명 콘서트 프로그램 < Live on KEXP >에 한국 음악가 최초로 출연해 공연했다. KEXP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유서 깊은 공영 라디오 방송이다. 

이듬해 세이수미는 이 음반으로, 한국의 그래미 어워즈라 불리는 한국대중음악상(Korean Music Awards)에서 인디 밴드로는 이례적으로 무려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중 최우수 모던 록 음반, 최우수 모던 록 노래 부문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수상했다.

올해 6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PARADISE CITY)에서 펼쳐진 아시안 팝 페스티벌(Asian Pop Festival) 무대에 오른 세이수미. 파라다이스 문화재단(Paradise Cultural Foundation)이 주관한 이 행사는 아시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뮤지션들 가운데 라이브 공연이 특히 뛰어난 아티스트들로 라인업이 꾸려진다.
ⓒ 아시안 팝 페스티벌

해외 음악 팬들

몇 년 전부터 보수동쿨러(Bosudong Cooler)나 해서웨이(Hathaw9y) 같은 부산 지역 밴드들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세이수미와 함께 합동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 신(scene)은 크지 않다는 게 세이수미의 진단이다. 김병규는 이렇게 말한다.

“대구가 그렇듯이 부산도 명맥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라이브 클럽이 하나 정도 있을 뿐이에요. 서울 홍대 앞처럼 왕성하진 않죠.”

대신에 요즘은 지역과 국경을 넘어 해외 음악 팬들 사이에서 세이수미의 음악이 편견 없이 확산되고 있다. 최수미는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멀리 북중미에서도 젊은 팬들이 느는 걸 체감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멕시코시티에서는 전체 관객의 약 90%가 20대 젊은 층이었다.

K-팝, K-드라마 덕도 있다고 한다. tvN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 유미의 세포들(Yumi’s Cells, 柔美的细胞小将) >(2021~2022)이나 JTBC의 < 알고 있지만(Nevertheless, 无法抗拒的他) >(2021) 등에 이들의 음악이 삽입된 것도 해외 팬들을 더 매혹한 계기가 됐다. 최수미는 “영어 작사에 대한 고민이 늘 깊은데, 해외 팬들은 갈수록 한국어 가사에 더 열광하는 분위기여서 놀랍다”고 말했다.

2022년 발매된 정규 3집 < The Last Thing Left >의 컴팩트 디스크.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10개의 곡들이 트랙을 채우고 있다. 최수미가 모국어로 부른 타이틀곡 < 꿈에(To Dream) >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세이수미 제공

2022년 결성 10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EP < 10 >의 리미티드 에디션 카세트테이프. 기존 대표곡들을 편곡한 작품들과 함께 요 라 탱고(Yo La Tango), 페이브먼트(Pavement) 등 세이수미가 평소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노래를 커버한 트랙들이 담겼다.
세이수미 제공

수년간 투어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묻자 네 가지 답이 나온다. 김병규는 2018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공연을, 임성완은 2019년 영국 웨일스의 그린 맨 페스티벌(Green Man Festival)을 꼽았다. 김재영에겐 지난해 일본 가고시마의 그레이트 사츠마니안 헤스티벌(The Great Satsumanian Hestival)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최수미는 2018년 첫 유럽 투어 당시 프랑스 소도시 콜마르(Colmar)의 가정집 뒷마당에서 했던 공연을 잊을 수 없다고.

“아, 맞다. 폴란드 크라쿠프(Krakow)에서 술고래 아저씨랑 진탕 마셨단 것도요!”

최수미가 기억을 끄집어내자 다른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들은 폴란드식 만두 피에로기(pierogi)와 함께 그곳의 술 문화를 제대로 체험했다고 한다.

이들의 월드 투어는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곳은 하나다. 지금 이 자리, 부산 수영구 남천바다로의 비치 타운 뮤직. 인터뷰 말미에 최수미가 이런 말을 던진다.

“어떤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을 내놓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최대한 담아내고 싶어요. 그게 바로 밴드 하면서 사는 거죠.”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보컬과 기타의 최수미(Sumi Choi, 崔守美), 리드 기타의 김병규(Byungkyu Kim, 金秉奎), 드럼의 임성완(Sungwan Lim, 林性完), 베이스의 김재영(Jaeyoung Kim, 金才永).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이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솔직담백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임희윤(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허동욱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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