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동인 고물’과 ‘고블린파티’ 두 단체가 협업하여 만들어 낸 <꼭두각시>는 연주자가 춤을 추고 무용수가 연주를 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들은 전통 음악과 현대 무용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 기존 장르의 문법을 의심하며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음악이 다른 장르와 협업할 때 관객의 감정을 고무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작품 주제를 위한 배경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꼭두각시 > 는 이러한 주객 관계에서 벗어나 음악과 무용이 주제 의식을 견지하며 동행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옥상훈(Ok Sang-hoon)
최근 들어 장르적 협업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크게 늘었다. 협업은 오늘날 한국 공연 예술계의 단면을 보여 주는 키워드다. 누가 누구와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협업 자체가 새로움을 보장하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장르의 결합이 곧 협업의 가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결과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중요하다.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장르 간 힘의 균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각각의 장르가 만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이 결여된 협업은 단순한 눈요깃거리에 머무르기 쉽다. 그런 점에서< 꼭두각시 > 는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역대 최고의 협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협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 꼭두각시 > 는 우수한 창작 레퍼토리 발굴에 힘쓰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1년 전통 예술 부문 ‘올해의 신작’ 중 하나로 선정한 작품이며, 이듬해 2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 같은 해 9월에는 국제 공연 예술 플랫폼인 서울아트마켓에서 쇼케이스를 펼쳤으며, 10월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되었다.
독자적 행보
이 공연에서는 무용수가 연주자를 조종하며 악기 연주에 개입하는 장면을 비롯해 각자의 역할이 해체되거나 전복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는 과연 누가 조종하는 주체이고 조종당하는 객체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동시에 현대인들이 처해 있는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옥상훈
< 꼭두각시 > 는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둔 음악동인 고물(Musical Coterie Gomool, 古物)과 세 명의 안무가들로 결성된 무용 단체 고블린파티(Goblin Party)가 함께한 작품이다. 두 단체의 만남은 흥미진진한 사건을 예고하듯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음악동인 고물은 음악감독 이태원(Lee Tae-won, 李泰源)과 국악을 전공한 3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은 이른바 ‘공연형 다큐멘터리(Staged ary)’라는 양식 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풀어낸다. 고물은 한국의 전통음악이 동시대에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고 또 형상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전통 음악을 둘러싼 개념‧제도‧규칙‧시스템 등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동안 고물은 창작자들이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 혹은 시스템의 밖을 상상할 때 어떤 가능성이 열리는지 보여 주곤 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들, 또는 결코 뒤섞일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가장 먼저 질문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꼭두각시 > 도 이런 사유의 연장선에 있다.
고블린파티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도깨비의 정체성을 표방한다. 한국의 도깨비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재기발랄한 존재로 생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이들은 대표 없이 세 명의 안무가가 공동으로 창작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을 추구하며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어 이례적인 단체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꼭두각시 > 는 음악계와 무용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온 두 팀이 호흡을 맞췄다는 사실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너지고 넘나드는 경계
5명의 연주자와 3명의 안무가들이 한데 어울려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농후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옥상훈
두 팀의 독특한 협력 관계는 공연 소재인 꼭두각시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감지된다. 꼭두각시는 우선 유치원 학예회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남녀 어린이들이 짝을 이뤄 추는 춤과 반주 음악을 가리킨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대부분 어린 시절 꼭두각시 춤을 직접 추었거나 접해 본 경험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노래와 춤, 풍물 연주 등을 선보이던 조선 시대 남사당패의 연희 중 하나인 전통 인형극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서양의 마리오네트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꼭두각시의 다층적 의미와 맥락은 협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된다. 움직임, 놀이, 음악, 수동적인 인형의 모티브 등이 직관적인 방식으로 자유로이 뒤섞인다.
이 공연에서는 기존의 문법이 분할되거나 전복된다. 예컨대 무대 위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의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뒤엉켜 있다. 연주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용을 하고, 무용수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몸놀림이 무용으로 접합되는가 하면, 무용수가 악기 연주에 개입함으로써 퍼포먼스의 주체와 객체가 기이하게 뒤틀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또한 음악은 움직임이, 무용수는 음악이, 연주자는 오브제가 되기를 자처하며 음악과 무용 그리고 놀이가 분리되지 않고 어지러이 뒤섞인다. 장르의 경계가 다양한 층위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 공연의 묘미는 무용이든 음악이든 하나의 장르로 작품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드는 순간 내면화되었던 개념의 틀을 관객들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음악에도, 무용에도 포섭되지 않으면서 각 장르의 문법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은 음악‧무용‧놀이가 무엇인지,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까지 대범하게 확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협상의 테이블
2020년, 국립국악원의 뮤직비디오 제작 프로젝트 참여 당시 음악동인 고물이 뮤직비디오 촬영에 앞서 찍은 프로필 사진이다. 왼쪽부터 가야금 홍예진(弘藝珍), 해금 이유경(李裕卿, 객원), 대금 고진호(高辰虎), 장구 정준규(鄭峻圭, 객원), 피리 배승빈(裵升彬). 2006년 결성된 음악동인 고물은 전통 음악을 둘러싼 첨예한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 국립국악원
< 꼭두각시 > 를 단순히 현대 무용과 전통 음악의 결합이라 설명하는 건 단면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개의 협업들이 예술 장르의 병렬적 나열로 수렴되는 데 반해 고물과 고블린파티의 협업에는 특별함이 있다. 다양한 맥락이 뒤섞여 있는 꼭두각시라는 소재가 두 단체의 협업에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 음악과 움직임에 대한 탐구는 꼭두각시를 현재 그들만의 관점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음악과 다른 장르 간 협업은 음악이 다른 장르와 만날 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에서 출발한다. 고물과 고블린파티의< 꼭두각시 > 는 음악과 무용의 경계를 지웠다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경계에서 끝없는 협상을 통해 장르의 규범을 재정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협업의 바탕에는 두 단체가 지닌 내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 꼭두각시 > 는 음악과 무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고, 움직임이 전면에 배치되는 순간에도 음악의 역할이 선명하게 감지되는 치밀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각 팀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까다로운데, 이를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 축적되었을 대화의 시간을 가늠해 보는 일도 흥미롭다.
성혜인(Seong Hye-in, 成惠仁)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