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은 그 자체로 종합선물 세트와 같은 고장이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고갯길이 있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 있다. 역경을 딛고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문화유산 낙산사(洛山寺)가 있으며, 한국 최고의 서핑 성지로도 꼽히는 곳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고개를 넘을 땐 늑장을 부릴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뛰어난 풍광이 여행자를 붙잡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비밀스러운 길을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길을 다소 돌아가더라도 강원도(江原道)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고갯길을 놓치지 말라고 추천하는 이유이다.
아름다운 고갯길과 배려의 건축
설악산은 한국인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산이다. 설악산의 한계령 이남 오색지구를 남설악이라고 하는데, 주전골은 남설악에서 가장 수려한 계곡으로, 하이킹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골이 깊어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수 있으며, 주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고갯길의 이름은 ‘오색령(五色嶺)’이라고도 부르는 ‘한계령(寒溪嶺)’이다. 한계령은 ‘차디찬 계곡을 끼고 있는 고개’를 뜻한다. 실제로 해발고도가 1,000미터가 넘어 근처의 대관령(大關嶺)이나 미시령(彌矢嶺), 진부령(陳富嶺) 중 가장 높은 고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實學者)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그가 1751년 저술한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 추지령(楸地嶺)과 철령(鐵嶺), 연수령(延壽嶺), 백봉령(白鳳嶺), 대관령, 그리고 한계령을 강원도의 이름난 여섯 고개로 꼽았는데, 그중에서도 한계령을 최고라 칭했다.
고갯길 정상에 다다르면 지난 1980년대 초에 들어선 한계령휴게소를 만날 수 있다. 녹음에 둘러싸인 설악산(雪嶽山) 국립공원을 감상하려는 이들의 시선을 가리지 않으려는 듯 처마 선을 유난히 낮게, 그리고 테라스를 길게 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기암괴석 너머 푸르른 동해를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건물은 한계령의 정취를 방해하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지붕 높이를 낮췄고, 주변 산세와 어울리게 높낮이를 조절했다.
이런 세심한 고민을 바탕으로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과 그의 후배인 류춘수(柳春秀)다. 한계령휴게소가 그러하듯 김수근의 건축은 배려의 미학이 특출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갑자기 세찬 비바람이 불면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처마 밑이나 내부로 들어와 쉴 수 있도록 1층을 최대한 열린 형태로 설계했으며, 아예 골목길 형태로 만들어 쉬엄쉬엄 지나다닐 수도 있도록 했다. 내부 기둥에 붙어있는 1983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 수상 동판은 그런 배려심 넘치는 설계에 대한 헌사일 것이다. 동시에 자연을 대하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계곡 하이킹과 온천욕의 조화
주전골 입구에 있는 용소폭포는 높이는 약 10m, 소의 깊이 약 7m로 아담한 규모다. 옛날 옛날 이 소에서 살던 천년 묶은 암수 이무기 2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하다가 수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이곳에서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굽이굽이 내려가다 보면 곧 오색약수(五色樂水) 입구 쯤 자리한 약수터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이곳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바로 ‘오색약수’와 ‘주전골(鑄錢谷) 하이킹’이다. 서기 1500년경 한 승려에 의해 발견된 오색약수는 하루 용출량이 1,500리터에 달하는데, 그 역사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아 2011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다섯 가지 색깔의 약수를 뜻하는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주전골 위쪽에 있던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찰 주변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특이한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약수의 이름이 오색약수, 지명은 오색리, 한계령의 또 다른 명칭인 오색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의 영역일 따름이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얼핏 보면 투명한 약수지만, 입에 대어 보면 산화된 철의 맛이 난다. 실제로 철(鐵) 성분이 유독 많다 보니 오래 두면 산화반응을 일으켜 투명색에서 회색을 거쳐 다갈색에 이어 황토색으로, 최종적으로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즉 다섯 가지 색을 모두 지녀 오색약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이다.
오색약수는 주전골 하이킹을 하기에 최적의 출발점이다. 오색석사 터에 새로 지어진 성국사(城國寺)와 선녀탕(仙女湯)을 지나 용소폭포(龍沼瀑布)에 이르는 약 3.5킬로미터 거리의 트레일은 당일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왕복 2시간에서 3시간 정도가 걸린다. 걷다 지치면 울창한 녹음 사이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발을 담가봐도 좋다. 시원함을 넘어 차갑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특히 오색약수에서 성국사까지 이어지는 약 700미터는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어 노약자나 교통약자도 큰 어려움 없이 주전골, 나아가 설악산 국립공원의 정수를 모아둔 것 같은 장쾌하며 압도적인 경치 속으로 녹아들 수 있다.
주전골 근처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는 오색약수를 이용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톡 쏘는듯한 탄산 온천에는 탄산과 칼슘, 철 등 인체에 유용한 성분이 풍부해 신경통, 피로 회복, 위장 장애 등에 효과가 있다.
ⓒ 오색그린야드호텔
하이킹을 마치고 오색약수로 돌아온 뒤에는 온천욕으로 몸을 풀며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추천한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낸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는 오색약수를 이용한 온천욕이나 한국 특유의 문화인 찜질방도 체험할 수 있다. 온천 후 출출해진 배는 오색약수와 호텔 사이에 있는 20여 곳에 이르는 식당에서 채울 수 있다. 이곳에서는 도시에서 맛보기 힘든 다양한 산채(山菜) 음식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며 말린 황태(黃太)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여기에 강원도에서 옥수수 알갱이나 더덕 뿌리를 넣어 만든 막걸리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이다.
낙산사(洛山寺) 홍련암(紅蓮庵)은 동해에서 떠오른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 중 하다나. 바닷가 석굴 위에 지어져 암자 법당 아래로 바닷물이 쉴새 없이 출렁이며 드나든다.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海水觀音空中舍利塔)에서 시민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낙산사는 빼어난 절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기도 성지’, ‘관음 성지’라고 불릴 만큼 소원을 빌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바다
낙산사는 서기 671년에 지어진 이래 무려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다. 애초에는 3층으로 지어졌다가 1467년에 7층으로 높여 세운 칠층석탑을 비롯한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홍련암(紅蓮庵)은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떻게 앙상블을 이루며 장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사찰을 세운 의상대사가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친견했다는 낙산사의 창건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로서, 푸르른 동해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절묘한 배치가 인상적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 2005년 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산불 탓에 낙산사 건물 중 20여 채가 불에 탔다는 점이다. 의상(義湘)기념관에 전시된‘녹아내린 동종(銅鐘)’이 당시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소실, 그리고 재건을 거듭해온 생명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 2005년의 경험은 슬픔으로만 기억되고 있지는 않다. 녹아내린 동종 맞은편에 전시된 첼로와 바이올린이 그 증거들이다. 당시 불타고 남은 건물의 대들보를 이용해 만든 것들인데, 고난에 굴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서피비치는 하조대해수욕장 북쪽에 조성한 국내 최초 서핑 전용 해변이다. 이국적인 풍광과 함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구성되어 있으며, 비치 파티, 캠핑 등도 즐길 수 있다.
서피비치에서는 ‘서프 스쿨’을 운영한다. 초보자부터 중상급자까지 수준별 맞춤 강습이 가능하다. 또 서프 요가, 롱보드, 스노쿨링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낙산사가 정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라면, 죽도해수욕장과 인구해수욕장 주변에 즐비한 서핑 숍들은 양양의 동적인 활력을 보여준다. 파도의 규모와 빈도가 적당하고 바닷물이 유난히 맑아 한국 서핑 숍의 약 70퍼센트가 양양에 몰려 있을 정도이다. 하조대해수욕장에는 2015년에 한국 최초의 서핑 전용 해변인 1킬로미터 길이의 서피 비치(surfyy beach)도 생겼다. 7월 말 8월 초의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에는 그야말로 ‘물 반 서퍼 반’으로 채워지는 곳이다. 초심자들도 어렵지 않게 강습을 받을 수 있어 며칠 묵으며 배우는 여행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는 사이 주전골 같은 산과 계곡이 그립다면 해수욕장 사이에 자리 잡은 죽도정(竹島亭), 또는 하조대(河趙臺) 일대를 산책해보기를 추천한다. 죽도정은 죽도해수욕장(竹島海水浴場)과 인구해수욕장(仁邱海水浴場) 사이에 돌출된 죽도산 위에 있는 정자이다. 주변 암반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전망대에의 조망이 일품이다. 책 한 권 가지고 올라가 그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면 이보다 훌륭한 독서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조대는 한국 정부가 지정한 명승(名勝) 가운데 하나다. 정자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거대한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사 소나무가 아니다. TV에서 공영 방송이 시작되거나 끝날 때 한국 국가인 애국가가 1절부터 4절까지 흘러나오는데, 2절 도입부에 등장한다. 이에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모르는 이가 없는 소나무가 되었다. 물론 유명세가 전부는 아니어서, 그 자체로 독특한 미감(美感)을 뽐낸다. 어떤 면에서는 산과 계곡, 바다, 그리고 문화유산을 아우르는 여행지로서의 양양 그 자체를 대표한다는 느낌도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