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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음악극 <정조와 햄릿>을 연출한 공연연출가 임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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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음악극 <정조와 햄릿>을 연출한
공연연출가 임선경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공연을 연출하는 임선경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 혹은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공연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어서 어떤 공연을 연출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답이 쉽지는 않습니다. 음악과 이미지를 결합하고, 그 결합으로 각 무대 요소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2.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으로 선정돼 관객과 만난 음악극 <정조와 햄릿>을 연출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정조와 햄릿>이 어떤 작품이고, 어떻게 이 작품과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조와 햄릿>은 2016년부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음악극 시리즈로 진행해오던 프로젝트인데, 저는 2020년부터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연출했던 <푸른수염의 시간>을 보고 기획팀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작품을 내가 손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하되 재해석이 자유롭게 열려있다는 제안에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3. 시공간을 초월해 정조와 햄릿을 한 무대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분이 흥미를 가지셨을 것 같은데요.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제 앞을 벽처럼 가로막았던 질문이 바로 ‘정조와 햄릿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허구와 역사’라는 단어를 계속 중얼거리며 다녔습니다.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을 살다가, 시간이 없는 세상 ‘영원’에서 그들은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이미지로 엮어지면서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걸 공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요. 공연을 보신 분들은 지금 제 이야기에 어느 한 장면을 쉽게 떠올리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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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햄릿> 공연 스틸 컷
자료 제공_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4. 아버지가 왕권의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는 현 권력자의 눈치를 보느라 아들과의 관계를 포기한 점, 분노를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환경에서 아버지를 죽인 자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계속 버텨내야 했다는 점 등 정조와 햄릿은 공통점이 많은데요, 이 외에 그들이 만나도록 서로를 이끈 힘이 있을까요?

정조와 햄릿이 만나도록 서로를 이끈 것은 같은 번민, 같은 고뇌였을 겁니다. 잘 때조차도 벗어놓지 못했던 정조의 용포, 어머니의 결혼식에서도 갑옷처럼 입고 있던 햄릿의 상복. 벗으면 죽을 것 같았겠죠.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실제로도 목숨을 잃을 것 같은 위기에서 입고 있었으니까요. 불안일 수도 있고, 아집일 수도 있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련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남들에 의해 입혀진 그 옷이 자신의 옷인지, 스스로 택한 것인지 아무도 물어본 사람이 없고, 그들 스스로도 질문해 본 적이 없었죠. 정조와 햄릿, 그리고 관객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신념, 정의,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당신의 것인지. 주입된 것이었다면 그것을 깨고 나올 용기가 있는지.


5. 이번 작품을 연출하는 데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엮어 설명해드리고자 하는 공연이 아니라, 많은 이미지의 파편과 실마리들을 공중에 둥둥 띄워놓고 있는 작품입니다. 관객 각자가 그 파편들을 채집해서 자신 안에서 다시 엮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모든 표현수단이 감각적이고 가변적이고, 텍스트 중심으로 정보전달이 되는 공연이 아니다 보니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걱정의 말을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함께 준비했던 아티스트들조차도 완성된 무대를 보고서야 퍼즐이 완성되었다고, 이미지들이 서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고 말해주었어요.
기존 공연 문법에 익숙한 분들은 어렵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일반 관객들은 오히려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주제를 이해하고 인물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6. 실제 공연을 본 관객분들의 반응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한 초등학생 관객은 정조의 용포와 햄릿의 상복에 대한 코드를 정확하게 읽어냈더라고요. 이 이상 말씀드리면 공연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또 여든 살이 넘은 관객 한 분은 아르코 극장 로비에서 제가 연출이라는 걸 아시고 다가오셔서, 공연이 피카소의 그림 같아서 그 조각을 맞추느라 정신 없이 공연 시간이 흘러갔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씨실과 날실로 견고하게 짜여진 멍석이 바닥에 깔리지 않아도, 점을 찍어 올려놓은 무대에 이렇게 관객들 스스로가 선을 그리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엮어 가져가주는 모습에 공연을 만든 저희야말로 참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7. 코로나 이후, 가장 먼저 문을 닫은 곳이 공연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연계가 많이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연 현장에 계시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조와 햄릿>을 준비하던 2020년에는 우리 사회가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 갑자기 취소되는 공연이 많았습니다. 공연 몇 시간 전에 극장에서 쫓겨났다는 등 다른 공연의 소식들을 접하면서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이 작업 참여자간의 유대감과 작품 집중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절감하던 때였습니다.
<정조와 햄릿> 기획팀은 공연이 언제 무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10월 말 예정인 작품을 촬영 공연으로 선회하고, 아티스트의 사례비를 일부 선지급하는 결정을 연초에 내린 뒤 프로덕션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이 작품은 기획팀의 그런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건강하게 살아남은 행운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 공연으로 만들어진 2020년의 <정조와 햄릿>은 감사하게도 2021년에 좋은 기회들을 통해 극장에서도 관객과 만날 수 있었고 올해 역시 관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각 분야의 공연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